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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를 양성하는 여성학 수업 / 서서 소변 보는 것도 여혐이라고? 본문

페미니즘 비판

프로불편러를 양성하는 여성학 수업 / 서서 소변 보는 것도 여혐이라고?

상남자 CH. 2017.10.26 17:54



[ `프로불편러`를 양성하는 `여성학` 수업 ]


페미니스트 학자인 디프네 파타이와 노레타 코어티지는 여성학 교수로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책을 통해 이 분야의 문제점과 과장된 억압(여혐)에 대해 자세히 기술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학생들이 모든 문제를 매번 남성, 남성, 남성으로 돌리는 수업에 얼마나 자주 반발하는지를 보고했다. 많은 수업에서 여성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은 남성들 탓으로 돌려지기 일쑤다. 남성이 좋다거나 일부 남성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여학생들은 다른 학생 그리고 종종 페미니스트 교수들에게 공격당하기 십상이다.


그들에 의하면 여성학 수업은 젊은 여성들을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양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는다. 여기에는 모든 행동을 억압의 증거(여혐의 증거)로 해석하게끔 장려하는 것도 포함된다. 여학생들은 `불만 수집가`가 되는 법을 배운다. 즉 끊임없이 남성에게 분노할 거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수업에서는 모호한 행동들 (가끔은 순수한 행동들)까지도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증거로 해석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여성학 수업이 불만거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뒤진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받아왔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더 많은 이유를 찾는 것 말이다.


파타이와 코어티지 교수의 책에는 한 페미니스트 교수는 학생들에게 밖으로 나가 손을 잡은 커플들을 관찰하라고 한다. 누구의 손이 앞에 있는 지 말이다. 그 결과 남성의 손이 거의 언제나 여성의 손 앞쪽에 있음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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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학생들에게 커플이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여성의 손은 권력에서 밀리는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하는 것에 주목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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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팔이 부딪치면 손을 잡는 데서 오는 좋은 기분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낸 것 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키 큰 사람의 손이 앞쪽으로 가게 해서 손을 잡는다.

이건 억압(여혐)이 아니다. 몇몇 페미니스트 교수들은 여성학 강의에서 이를 억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여혐이라고? ]


아니면 1장에서 다루었던 예를 떠올려 보자.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여성에게 군림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불만 사항은 진지하게 재고되었으며, 다양한 기관들은 남성도 여성처럼 앉아서 소변을 보게끔 남성 소변기를 제거했다. 이런 조치가 실제로 여성에 대한 억압(여혐)을 감소시킬까?


남성은 서있는 동작을 통해 여성을 억압할까? 분명 수많은 대안들이 있을 것이다.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단지 남성들에게 더 쉽고,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일 뿐이다. 어떤 법정에서도 서서 소변을 본다는 사실을 근거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다며 구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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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여혐)이라는 개념은 과학의 요건, 즉 근거에 대한 개방적이면서도 엄격한 평가 없이는 측정될 수 없다. 나는 이 작업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억압(여혐)이 매우 정서적이고 정치화된 개념이기 때문이며 이를 주장함으로써 이득을 꾀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치적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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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에 대한 배려가 권리로 변질되다 ]


남성들의 억압적 음모 때문이 아니었다. 실제적인 원인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 만든 사회집단이 부와 지식, 권력을 창출했다는 데 있다. ( 정부, 법, 제도, 경제 시스템, 과학, 학교, 군대 등등 )


여성들은 잔혹하고 위험하며 잦은 고통을 수반하는 다툼과 경쟁으로부터 다행히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남성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뛰어들었다. 교역에 돈을 투자했던 남성들 중 일부는 큰돈을 벌었으며, 다른 이들은 파산했다. 남성들은 싸우고, 위험에 뛰어들고, 투쟁하고, 탐험하고, 고통받고, 승리했다. 여성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분명 옛날에 여성집단이 영토 전쟁을 위해 군대를 조직하거나 부를 위한 상품 제조와 무역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그러나 아주 소수의 여성들만이 이런 일들을 했다.


오랜 기다림 후에 남성들이 이를 대형 기업 및 기관들로 구성된 구조를 갖춘 사회로 훌륭하게 변모시키자 그제야 여성들은 기여한 바가 없는 자신들의 몫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위험 요소와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고,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안전해지자 여성들은 과감히 나서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데 만족하지 않았으며, 남성들이 조직한 사회구조가 자신들에게 더 우호적인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성들은 차별철폐 조치와 특별서는 물론, 자신들에게 적합하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영원히 그럴 것 같다. 여성들은 특별사무실과 시설들,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 감정들을 돌봐줄 관리감독기관을 요구한다. [ 여성들은 자신들을 향한 남성들의 타고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보호본능을 이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도록 설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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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종류의 행동을 남성의 여성억압으로 해석하는 신공을 연마해 왔다. 하지만 대개 이런 해석들은 말도 안 되게 과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짓인 경우도 다반사다.





<<소모되는 남자>>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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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F. 바우마이스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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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에피스 석좌교수.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교수. 사회심리학 대학원 프로그램장. 400여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 미국 과학정보기구가 가장 많이 인용한 심리학자 중 한명으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심리학 저널 논문 선별 편집장. 지은 책으로는 21권 이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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