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거 한방에 녹는 남자들 많잖아... 근데 그게 사랑일까?





내 짧지 않은 인생 역정만큼 사랑에 대한 정의도 변해왔다. 젊은 시절, 꽤 오랜 시간 나는 사랑에 대해서 2가지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1.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즐거울 것.
2. 배타적인 소유욕이 느껴질 것.



결혼 전, 1번과 2번을 충족하여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꽤 많이 만났지만 결혼에 골인할 수는 없었다. 어떤 여자들과는 혼담이 오가기도 했지만 상견례까지도 가지 못했다. 혼담이 오가면 기분이 좋고 설레이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압박감과 책임감이 느껴져서 가슴이 답답해져 왔고 그래서... 어찌 되었건 모두 헤어졌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혼담이 오가는 중에도 매우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여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전 여친들과는 무슨 차이가 있었기에 그랬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 보건데, 사랑의 정의에 문구 하나를 추가 해 봄이 어떨까.






헌신의 잘못된 예. 헌신하면서 기뻐야지 괴로우면 안된다.

 


3. 헌신하고 싶을 것, 헌신하면 기쁨이 느껴질 것.

게시판에서 남자들 혹은 여자들 스펙 나열하면서 누가 나은 지 고민하는 유치 찬란한 글들을 본다. 심지어 어느 남자가 결혼 상대로 괜찮을 지 하는 인륜지대사 상담을 남자들 스펙 몇개로 처리하는 천박함을 보노라면 기가 찬다. 자신의 성격, 가치관과 더불어 그 사람의 평소 행동, 가치관, 성격을 나열했다면 그나마 덜 유치하게 보였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지에 대해서인데 놀랍게도 이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1번과 2번에 해당하는 사랑을 한다. 하지만 3번에도 해당하는 지 한번 반문해보라. 내가 그 사람에게 헌신하고 싶고 뭔가를 자꾸 주고 싶은지 말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밥을 사는 것이 아깝고, 내가 그 사람보다 결혼식 비용을 더 쓰는 것이 아까운지 말이다. ( 혹은, 덜 쓰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은지. )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서 신분 상승을 이루고 싶고 여생을 편하게 보내고 싶은 것인지 혹은 내가 부모님께 못한 효도(손주 보는 것 포함)를 대신 시킬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하는 것인지 고민해보라. 이런 사람이 있다면... 부디 남을 불행에 빠뜨리지 말고 혼자 살길 권한다. 

내가 그 사람을 통해서 어떤 이득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때부터 결혼은 흥정, 놀음, 거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 헌신은 일방통행이어서는 안된다. 한 사람이 헌신하고자 할 때, 그 배우자는 이득만을 취하고자 한다면 이는 곧 배우자에 대한 착취로 연결되며 이런 결혼은 필시로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결혼 상대로 생각하거든 내가 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지 반문해보라

또 하나, 상대방이 나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인지 필시로 보아야 한다.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할 뿐이고 자신의 작은 헌신을 크게 부풀려 이득을 얻는 발판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라. 그런 사람은 베필로 삼아서는 큰 화를 부른다. 세월의 무게에 당신의 헌신은 곧 원망과 분노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1.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즐거울 것.
2. 배타적인 소유욕이 느껴질 것.
3. 헌신하고 싶을 것, 헌신하면 기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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