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저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가 아침에 몇 시에 나가고 몇 시에 들어오는지 관심조차 없어요. 큰맘먹고 집에 일찍 들어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죠. 제가 아내와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해도 아내는 늘 피곤하다는 말 뿐이에요.”


“남편은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지금 제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차가운 표정으로 집을 둘러보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자기가 무슨 검찰에서 나온 사람도 아니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면 안되는 건가요? 남편은 아빠로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아이를 안아줘도 의무감으로 안아주죠.”


  

두 사람은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왜 서로를 비난할까?



“육아가 힘들다. 아이를 키울 때는 다 그렇다. 우리도 그 시기에 힘들었다.”


남편이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듣는 이야기나 아내가 옆집에 놀러가 커피를 마시면서 듣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육아가 힘들기 때문에 서로 더 돕고 배려해야 한다는 말은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부부가 서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부부가 서로 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착이라고 하면, 보통 부모와 아이 사이의 애착만 생각한다. 애착 관계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 사이에도 애착이 존재한다. 많은 부부가 서로 애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받는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는 1907년 남작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당시 상류층 가정에서는 자녀 양육을 부모가 아닌 유모와 가정 교사가 맡아서 했다. 존 볼비는 열 두 살이 되서야 부모와 처음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기숙사가 있는 명문학교에 들어갔다. 부모와 물리적으로 완전히 단절되었다. 훗날 그는 정신분석가 과정을 거쳐서 런던 아동지도 클리닉에서 장애아를 치료하게 된다. 장애아를 치료하면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부정적으로 처리한다고 분석했다. 유아기의 정서적 박탈이 인격 형성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결론내렸다.


존 볼비의 애착 이론은 다양한 방면의 후속 연구를 일으켰다. 캘리포니아 대학 사회심리학과 교수 필 셰이버와 신디 하잔은 존 볼비의 부모-아이 애착이론을 남자-여자 애착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부모 자녀 사이에 애착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성인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애착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부부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정서적으로 친밀하기를 원하고, 힘들 때 위로받기를 바란다. 부부 관계가 멀어지고 정서적으로 단절되면 서로 고통받는다.


미네소타 대학 교수 제프 심슨은 성인 남녀 83쌍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애착 관계 실험을 했다. 실험자는 부부를 방으로 불러 설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실험자는 부부에게 잠시 후 불안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설문지 질문 항목에서 부부 관계가 안정적이라고 말한 아내는 남편에게 불안한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위로해달라고 부탁했다. 반대로 설문지에 부부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말한 아내는 감정적으로 더 위축되고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남편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안정형의 남편은 불안한 아내를 신체적으로 감싸주고 정서적으로 위로해주었다. 불안형의 남편은 아내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고, 아내의 불안감을 가볍게 여겼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부부 사이의 애착에 있다.

애착이 손상되면 부부는 고통스런 순간에 직면한다.



부부 갈등에 대한 궁극적인 회복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원만한 합의가 아니다. 이런 방식은 악성 종양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 채 피부 밖에 드러나 있는 상처에 연고만 바르는 것이다. 부부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서적 결합이 가장 우선이다. 정서적 결합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부부는 서로를 치열하게 공격하고 비난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강렬한 몸부림이다.


우자가 독한 말로 상처를 주고 있다면 그 말 넘어에 담긴 의미를 생각보아야 한다. 그 말 넘어에는 정서적 결합에 대한 강한 요구가 있다.


“남편은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지금 제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차가운 표정으로 집을 둘러보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자기가 무슨 검찰에서 나온 사람도 아니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면 안되는 건가요? 남편은 아빠로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아이를 안아줘도 의무감으로 안아주죠.”


→ “여보. 난 너무 힘들어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이 도와준다면 제가 당신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저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가 아침에 몇 시에 나가고 몇 시에 들어오는지 관심조차 없어요. 큰맘먹고 집에 일찍 들어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죠. 제가 아내와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해도 아내는 늘 피곤하다는 말 뿐이에요.”


→ “여보, 난 당신의 따뜻한 눈빛이 필요해. 당신이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준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


부부가 사랑하면서 안전하게 결합되면 행복한 삶을 산다. 정서적 결합이 강한 부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 정서적 결합이 강한 부부는 어렵고 힘든 문제가 찾아와도 힘을 합쳐 그 문제와 싸운다. 서로를 향해 싸우지 않는다. 부부는 서로 적이 아니다. 서로 싸워야 하는 공공의 적은 부부 사이에 상처를 주며 오고가는 부정적인 말이다.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한다.

서로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아 고통받는다.

그 진심을 알면 변화될 수 있다.




유인원들 사이에도 서로 털을 골라주고 이를 잡아주는 등의 애착 행동이 나타난다. 






윗 글은 퍼온 글입니다. 멋진 글이죠. 윗 글에 완벽히 동의 합니다만 추가하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 가정엔 3대 헌법이 있습니다. 아내도 서로 동의한 헌법이죠. 바로 "신뢰, 헌신, 친밀감(애착)" 입니다. 신뢰는 건물의 기초 공사와 같고, 헌신은 기둥과 같고, 애착은 지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이 세가지를 가운데 놓고 이 원칙을 훼손시킨 사람이 잘못한 것으로 결론이 나는 거죠. 사안마다 다른 원칙 적용해가며 내 말이 맏니 니 말이 틀리니 할 거 없습니다.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를 속이면 신뢰가 훼손되죠. 건물의 기초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애착이고 헌신이고 다 무너집니다. 항상 불안합니다. 헌신은 상대방과 가까워지기 위한 기둥입니다. 말로만 떼워서는 안됩니다. 상대방을 위한 무엇인가 행동을 보여야죠. 그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그 위에 비로소 친밀감과 애착이 꽃피우는 것입니다. 


나를 속이는 사람에게 애착을 느낄 수 없고, 나에게 헌신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을 믿을 수는 없는 일이죠. 신뢰와 헌신이 이뤄진 후에 서로 웃고 의지할 수 있는 정서적인 교감 (애착, 친밀감)이 생긴다고 봐요. 물론 애착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말(잔소리,비교,비난,무시,조롱...)부터 끊어야 합니다. 




친밀감 없는 부부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으며, 헌신 없는 상대의 사랑은 믿기 힘들며, 신뢰가 상실된 부부의 삶은 기초공사 없는 고층빌딩처럼 불안정 그 자체입니다. ( 배려는 헌신의 일종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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